아는 목사님 막내 아들이 컬럼비아 공대와 쥴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합격해서 둘다 다닌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 것도 놀랍고 이걸 하고 싶어했다는 애도 참 신기합니다. 놀라워서 주변에 물어보니 그런 친구들 종종 있다고 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제일 일 잘하는 쥬니어 친구는 어릴 때 뮤지컬 (빌리 엘리엇을 했다고!) 을 하다가 독일에서 방송국 앵커인가 기자인가를 하고 건축과를 갔다고 해요. 어떤 직업이나 전공이 ‘나’라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도 아닌데 거기에 (때론 문자그대로) 목숨을 거는 문화를 보면 숨이 막히곤 합니다.가끔 검사동일체니 하는 헛소리나 의사들의 한결같은 선민의식같은 건 단순히 자기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이익집단 수준을 넘어서는데 (미국의 이익집단이 이기적인건 더하면 더했지…) 자기 자신을 그 직업과 동일시시키는 것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일생을 걸었고 한번 그 안에 들어가면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면서 생기는 이상한 컬트가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물론 조직의 이익 (이라 쓰고 조직을 장악한 몇몇의 이익이라 읽습니다.) 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런 조직 문화를 강요해 나가는 것이겠죠. (그래서 더욱더 그 집단 안에서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한 후배가 의사가 되어 참 기뻤었습니다. 나름 학생회 일도 열심히 하던 친구였고, 의사가 되기 위한 사명같은 것도 있는 친구였어요. (물론 입신 양명의 꿈도 있고) 어느날 그 친구 인스타그램에서 의사 정원 반대 1인 시위를 하는 것을 올린 것을 보고 아. 집단의 세뇌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면 이 친구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대의를 항상 자신의 의지와 동일시하는 자동 싱크 기능이 있는 친구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뭐가 됐든 하나하나의 정치적 / 비정치적 사안이 그냥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도 했구요. 이런 직업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개인에게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몇개월 전에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과 압박으로 학교에서 생을 마감하신 분의 뉴스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 분은 선생님이 아니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선생님이 아니면 그 삶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직업이 중요한 것이었을까? 까짓것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하고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게 불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었겠죠. 여지껏 걸어온 길을, 자신의 직업을 버리면 인생을 망친 사람이 되는 사람이 되는 압박 시스템. 그런 시스템이 유지가 되야 마른 걸레 쥐어짜듯 사람들을 쥐어짤 수 있겠죠? 그래야지 검사 조직을 위해 ‘이건 검사로선 해선 안될 일 같은데..’ 하는 생각을 누르고 ‘뻔한 범죄에 불기소하기’ 같은 일을 할 수 있겠죠. 직업적 소명보다 직업군의 이익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이 순간인 것 같아요. ‘직업적 소명’과 ‘직업=나’가 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직업적 소명은 중요하지만 직업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게다가 ‘동종 직업 = 우리’가 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올해 초 블루스카이에 적었던 글 (어? 이제 블루스카이도 임베딩이 되네?) 을 초안으로 블로그용으로 생각정리를 위해서 적은 글입니다. 아는 목사님 막내 아들이 컬럼비아 공대와 쥴리어드 음대를 동시에 합격해서 둘다 다닌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것도 놀랍고 이걸 하고 싶어했다는 애도 신기하다. 놀라워서 주변에 물어보니 그런 친구들 종종 있다고 한다. 지금 회사에서 제일 일 잘하는 쥬니어 친구는 어릴 때 뮤지컬 (빌리 엘리엇을 했다고!) 을 하다가 독일에서 방송국 앵커인가 기자인가를 하고 건축과를 갔다고 한다. 어떤 직업이나 전공이 나라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도 아닌데 거기에 (때론 문자그대로) 목숨을 거는 문화를 보면 숨이 막힌다.— 자코 (@jacopast.com) 2024-01-06T17:27:39.33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