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강도 당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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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해외 땅을 밟아본 것은 하와이였습니다. 카카오 전 직원 워크샵 때.2013년 6월. 카카오 하와이 워크샵새로운 세상이 어찌나 신기하고 좋던지.그리고 1년 후 샌프란시스코 첫 경험. 역시 카카오를 통해서 간 Ruby 컨퍼런스였습니다.컨퍼런스의 마지막 날, 저는 동료들과 떨어져서 혼자 돌아다녀 보기로 했습니다.샌프란시스코 거리를 홀로 걷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그제야 도시와 사람들이 보이고 샌프란시스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달까?그저 거리를 걸으며 선망하던 회사들의 건물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이 감정. 너무 좋다 이 기분. 언젠간 샌프란시스코에 혼자서 다시 와봐야지.몇 달 뒤인 2015년 2월. 저는 실제로 실행했습니다.살면서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본 것입니다.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7박 8일. 함께 갈 동료 없음.나는 과연 이 여행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무섭긴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여행은 좋았습니다.10년 전이었는데도 구글맵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습니다.버스, Bart, 칼트레인을 타고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돌아다녔습니다.혼자서 밥을 주문해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서 자신감도 약간 얻었습니다.이 정도면 미국에 뚝 떨어트려놔도 굶어죽지는 않겠는걸?처음엔 엄청 긴장해서 돌아다녔는데 며칠 다니면서 긴장이 풀어졌습니다.마치 우리 동네처럼 구석구석을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녔습니다.유니온스퀘어 근처의 텐더로인이라는 동네는 무서운 동네인 줄도 모르고 그쪽으로 걸어 다니면서 수많은 거지들의 시선을 보며 오싹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그것도 겪다 보니 무뎌져 갔습니다. 뭐야, 미국 별것 없네. 당장 와서 살아도 되겠는걸.제 인생에서 자신감이 넘쳐흐를 때면 언제나 그 자신감이 완전히 깔아 뭉개지는 사건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겸손함을 얻게 됩니다.)이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여행의 막바지인 6일째 날.오전엔 뭐 할까? 할 일이 없네.스탠퍼드 대학교나 가보자. 도대체 어떤 학교길래 그렇게 많은 인재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걸까?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스탠퍼드 캠퍼스 어딘가에서, 2015년 2월캠퍼스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에는 레드우드 시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습니다.카카오에서 옆자리에 앉아 함께 일했던 옛 동료들.카카오를 그만두고 미국까지 와서 이름 없는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짠하게 느껴졌습니다.(이 회사의 이름은 몰로코였고 지금 시총 3조 원의 회사가 되었습니다)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밤에는 위험하니 우버를 타고 가라고.저는 그냥 칼트레인을 타고 가겠다고 말했습니다.우버는 재미가 없다고. 시간이 아직 9시밖에 안 됐는데 뭐가 위험하냐고.칼트레인을 타면 기분이 좋았거든요. 2층 기차에서 바라보는 도시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습니다.새로운 세상이 그저 재밌어서 더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마지막 여행 이틀은 다운타운이 아닌 밀브레라는 곳에서 지냈습니다.샌프란시스코 공항이 있는 곳. 뭐 하는 도시인지도 모르지만 공항이 가까우니 집에 돌아가기 좋고, 다운타운에만 있는 것보다 새로운 장소에도 있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었습니다.칼트레인에서 내려서 밀브레의 숙소까지의 거리는 약 800미터 정도.시간은 밤 21시 50분.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구글맵을 보면서 집에 걸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밤거리의 저 편에서 남자 한 명이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저와의 거리는 50여 미터.후드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걸어오는데 느낌이 좋질 않았습니다.우리가 서로 지나치고 나서 몇 초 뒤 저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뒤를 획 돌아봤습니다.아니, 근데 이게 웬걸.제 바로 뒤에 다가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드를 뒤집어쓴 마약중독자같이 생긴 놈이.지나쳐 가다가 다시 돌아서 제 따라왔던 겁니다.그놈이 말했습니다.“헤이! 깁미 유어 폰!”“왓? 노…”퍽!“노” 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먹이 날라왔습니다.한 손으론 핸드폰을 들고 있는 제 왼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 제 얼굴을 때린 것입니다.주먹이 턱을 비껴서 목에 맞는 것이 느껴졌습니다.한 대를 맞았던가? 아니 두 대?‘뭐지?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몸속에서 아드레날린 같은 것이 나온 것인지 그 순간이 아주 느리게 흘렀습니다.주변의 상황이 슬로비디오처럼 보였습니다. 조용한 거리. 불 꺼진 집들.‘이렇게 집이 많은데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여기서 이렇게 아무로 모르는 개죽음을 당하는 건가?’‘어머니한테 인사도 못 하고 가는 건가?’‘안 돼, 그럴 순 없어!’팔을 휘두르며 뿌리쳐 냈습니다.순식간에 떨어져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했습니다. 거리는 1미터.맞서 싸울까 도망칠까? 500밀리 초쯤 생각했습니다.도망치는 게 더 안전하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습니다.내가 죽을 뻔했던 자리지금 생각하면 도망치는 길이 언덕길이었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저보다 따라오는 상대방이 훨씬 더 힘들었을 테니까요.뒤돌아볼 생각도 못 한 채 뛰었습니다.집에 도착해서 문 앞 열쇠를 꺼내는 데 손이 벌벌 떨리더군요.다행히 집까지 잘 들어가서 문을 잠갔고 그놈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습니다.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는데 턱에 살점이 크게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피가 나는 채로 그렇게 뛰었으니 입고 있던 하얀 옷에 피가 잔뜩 튀어 있더군요.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진짜 죽을 뻔했구나. 가슴이 쉽게 진정되질 않았습니다.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911에 전화를 하면 되는 건가? 맞았다고 하면 될까?근데 영어 못 하는데 잘 말할 수 있을까? 얘기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이틀 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조사받는다고 못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턱이 찢어진 건 어떡하지? 꽤 많이 찢어졌는데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닐까?근데 병원은 갈 수 있나? 보험은 어떻게 처리되는 거지? 영어도 못 하는데 젠장할.해외에서 사고가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고도 홈에서 나야지 원정에서 나면 모든 일이 너무나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대한민국 영사관 같은 곳에 연락했으면 한국어로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결국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연락을 해서 호스트와 함께 약국 같은 곳에 가서 응급 처치만 하고 마지막 하루를 쉬었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생각해보면 살면서 커다란 위험을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큰 병치레를 한 적 없고, 위험한 사고도 없었습니다.이날이 아마 제게는 가장 위험했던 사고 아니었을까?해외여행을 갈 때는 더 이상 까불지 않게 되었습니다.지역이 어떤지 스트리트뷰도 찾아보고 안전을 중요하게 따지게 되었습니다.특히 가족이 생긴 이후로 가족 여행을 할 땐 더욱더 안전함이 요구됩니다.신나게 까불며 돌아다니다가 한 대 제대로 처맞았지만, 다시금 겸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안 죽고 살아서 돌아온 게 정말 다행입니다.P.S 그때 제가 들고 있던 폰은 카카오에서 브라이언이 전 직원한테 선물해 줬던 아이폰 6였습니다.참나, 그 폰이 뭐라고. 그냥 줘버릴걸. 결국에는 안 뺏기고 잘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ㅋㅋ함께 읽으면 좋은 글: 여행 좀 많이 다녀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