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25번째 마감: 어린이 잡지에 트럼프를 등장시킨 연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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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과학’ 기사로 써야 할까요? 기사의 주제를 찾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제가 만들어놓은 ’과학적인 주제’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 주제(언어학)는 물화생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데 괜찮을까(이런 학문적 구분이 별 의미도 없는데 말입니다. 역시 학창시절의 경험은 평생 갑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하드 사이언스(중력파)는 다뤄야 과학 잡지같은 맛이 나지 않을까? 여기에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라는 점이 주제의 폭에 제한을 더합니다. 너무 정치적인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겠지? 등등.4월 1일 자 기획 기사로 ‘가짜 뉴스’를 준비하면서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가짜 뉴스 관련 연구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어요. 헤비 트위터 유저라서, 가짜 뉴스에 속거나 분개한(가끔씩은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죠. 마침 4월 1일이 만우절이니까 가짜 뉴스를 기획 기사로 쓰게 되었습니다.‘가짜 뉴스’는 어린이과학잡지에서 많이 다룰 법한 주제는 아닙니다. 우선은 ‘동물’이나 ‘블랙홀’처럼 그 대상이 명확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아요. 소재가 추상적 개념이면 설명하거나 일러스트로 나타내기에도 더욱 힘이 들겠죠. 게다가 소재가 너무 시사적이라 어린이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이 가짜 뉴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우선 첫 파트에서는 딥페이크 영상과 ‘적대적 생성망(GAN)’ 기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주는 사이트인 ThisPersonDoesNotExist.com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했지요. 가짜 뉴스를 만드는 기술적 배경(컴퓨터과학)에 대해서도 소개하고요.가짜 뉴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두 번째 파트에서 나옵니다. 딱 1년 전인 작년 3월, MIT랩이 트위터에서 가짜 뉴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분석한 대규모의 연구를 발표했지요. 이 연구를 중심으로 가짜 뉴스가 무엇이고 왜 이슈가 된건지,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지를 다뤘어요.MIT랩의 연구를 시각화하는 것이 이 파트 일러스트의 중심 문제였는데, 사이언스지 표지에 실린 불꽃을 참조하기로 했습니다. 즉,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수형도처럼 그려서 서로 내용이 퍼져나가는 양상을 비교하는 일러스트를 그린 것이죠. 가짜 뉴스가 퍼져나가는 중심에는 가짜 뉴스를 상징하는 물건과 인물을 배치했고(그렇게 해서 어린이과학동아에 처음으로 트럼프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트럼프를 등장시킨 기자는 아마 제가 최초일 겁니다….), 가짜 뉴스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에다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MIT랩의 연구는 트위터만 분석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카톡과 유튜브, 페이스북의 로고도 삽입했습니다.파트 2에 실린 가짜 뉴스 일러스트의 일부. 서춘경 작가의 작품.마지막 파트에서는 (흐름상 당연히도)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딱히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찾지 못해서 생각보다 산만한 페이지가 되고 말았는데, 지금 봐도 좀 아쉽네요(그래도 지구평평론자들의 동영상 캡쳐를 넣은 것은 뿌듯합니다).이 기획은 독자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대부분은 저처럼 ThisPersonDoesNotExist 사이트에서 만들어진 가짜 얼굴에 충격을 받았더라고요. 기획 기사가 나온지 벌써 3달이 넘었는데, 그 이후로도 사진 한 장으로 움직이는 얼굴을 만들었다거나, 위조 영상을 감별하는 기술을 만들었다거나 하는 딥페이크에 관한 새로운 뉴스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기획 기사에 싣지 못해 아쉬움과 동시에, 이런 보도보다 먼저 가짜 뉴스를 다루었다는 점에 뿌듯해집니다.이번 기획을 쓰면서 과학잡지에서 다루는 주제의 범위를 좀 더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제를 선택해서 기사로 쓸 수 있었던 것은 편집장님의 역할도 크지요. 작년부터 어린이과학동아는 난민, 라돈 침대, 도시 노후화, 여성 과학자, 가짜 뉴스 등 사회 첨단의 소재를 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어린이 매체보다도 더 넓고 진보적인 영역을 아우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물론 모든 어린이 매체를 본 건 아니지만요). 앞으로도 제가 다룰 수 있는,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주제의 범위를 계속 넓혀가고 싶습니다.2019년 7월 5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