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내게 죽음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결혼만큼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죽음의 무서운 결말 혹은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받는 충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죽음의 모호한 미스터리에 이끌렸다. 죽음의 언저리로 다가가 그 경계 너머를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중략)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음을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크리스 맥캔들리스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259쪽)잭 런던과 소로의 글에 경도된 스물 초반의 젊은이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그들의 글을 삶의 양식으로 실천하기 위해 알래스카의 대자연에 뛰어든다. 그리고 반년 만에 죽은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이 알래스카를 만만하게 본 인간의 만용인지 아닌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사이, 비슷한 삶의 궤적을 겪은 저자가 젊은이의 삶을 추적한다.이미 영화로도 나온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 가 드디어(이제야) 번역 출간되었다. 전부터 친구에게 추천받은 바 있어 꼭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 마음 한구석에 대자연에 대한 동경을 키우고 있던 사람이라 책에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특히 올해 우연히 가게 된 캐나다의 화이트호스와 알래스카 하이웨이가 등장해서 추억을 자극하기도 했다.읽으면서 ‘야생에서 홀로 살기’의 정의는 무엇일지 꾸준히 생각했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대자연의 출발선에 서야 할까, 사냥용 엽총과 총탄, 훌륭한 캠핑 장비를 챙겨가되 사회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면 되는 걸까. 존 크라카우어는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생을 비판하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좇는다. 많은 이들의 비판과는 달리, 크리스 맥캔들리스는(비록 엽총과 총탄을 챙기긴 했지만) 알래스카에서 반년 정도는 문제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생존가였다는 것. 즉,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만용이라기보다는 불운이었고, 과거의 저자도 저렇게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늙고 사회화된 많은 사람은 더는 젊은이들의(혹은 20년 전 그들 자신의) 숭고한 정신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지만, 읽는 와중에 자꾸만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늙은 남자 어르신들이 생각나서 좀 웃겼다. 자신이 자연인의 삶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라면과 매주 아내가 보내주는 김치가 없으면 두 주 안에 굶어 죽을 사람들. 그들이 딛고 섰다고 생각한 대자연은 사실은 가부장제라는 이름의 발판 아닌가. 문명이 그들의 무기이자 방패이다. 그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12월 29일.